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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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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태복음 강해(2014. 1. 15).
작성자 revjib
작성일자 2014-05-26
추천수 328
조회수 1791
본문 말씀 : 마28 : 8 - 10
말씀 제목 : 부활주를 만난 여인들
 
  기독교 역사는 놀랍지 않을 수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역사를 보더라도 십자가 구속사적인 사건이 있기 전날 이미 부활후에 일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6:31절).
  그런데 문제는 죄 많은 인간이다.
제자들을 보더라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빈무덤 앞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상기 시켜주었던 것이다.
  1). 갈릴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100km 떨어진 것이고
  2). 만남의 장소로 선택되어진 곳이 되었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1). 대다수의 제자들이 이곳 출신이고
  2). 주님의 공생애를 주로 사역하신 곳이고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소외계층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여기에 있다(요14:46, 7:41, 고전1:27, 행10:37절).
   L. Wiliams(윌리암스) 라고 하는 사람은 말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자만심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천하게 보이는 사람, 도구, 장소를 택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이다.  
 
              一. 죄 많은 인간의 실존(8절).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1). 환경에 약하고
  2). 현상에 약하고
  3). 분위기에 약하고
  사실이 그렇다.
  1). 조석지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2). 예수님의 무덤을 찾는 여인들의 심령상태를 종잡을 수가 없고
  3). 무서움과 큰 기쁨이 교차하고 있고
  이것이 인간이다.
  1). 무서움의 공포는 지진 때문이고
  2). 천사들의 역사적인 전제이고
  3). 주님이 살아 나셨다는 소식은 기쁨이고
  이렇듯이 초자연적인 역사를 목격한 것이다.
문제는 정말로 하나님 존재여부를 확실하게 알고 깨닫는 체험을 확고하게 한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 사랑을 기뻐하게 된다는 것이다(시2:11절).
  1). 여인들의 자세가 보여지고
  2). 빨리 가라는 천사들의 통촉이 있고(7절).
  여기에 여인들은 순종했다.
  1). 심리적으로는 무거웠고
  2). 무서움과 기쁨이 교차 했을 것이고
  그러나 발걸음은 빨랐을 것이다.
  1). 사명자의 삶의 여정은 민첩해야 하고
  2). 머뭇거리거나 지체해서는 안되고
  이유가 무엇인가?
  1).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고
  2). 생명 구원의 소식이고
  맞는 말이다.
기쁜 소식은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전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고 기독적인 역사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은 사명자들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머뭇거리면서 지체해서는 안될 것이다.
 
              二. 부활주를 만나는 영광(9절).
  기독 삶으로 돌입한다면  평강이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 다고 말은 하면서도 삶의 생활 전반에 평강이 없다면  분명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1).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2).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3).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지 않는 다는 것이고
  무슨 말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면 평강의 복된 역사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27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고
  2).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고
  3). 진리가 삶의 생활화가 되어야 하고
  그렇습니다.
기독신앙 삶의 최상의 복된 역사는 편암함을 소유하는 것이다. 아니 이것이 인간 삶의 자체에 가장 큰 행복이다.
  평안하뇨.
이 말은 카이레테라고 하는  헬라어로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인사말이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뻐하라 라는 의미가 있다. 두려움과 기쁨이 뒤섞인 마음상태에서 이러한 인사말로 고무시키고 있었던 것이다.(요16:20절).
  어쩌면 말이다.
  1). 자비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음성이고
  2). 은혜롭고 자비하신 하나님 사랑이고
  맞는 말이다.
인간은 너 나를 막론하고 삶의 평안함이 최상의 복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금상첨화의 부귀영광을 누린다 할지라도 평강이 없다면 불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속된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곳을 찾아 다닌다 할지리도 평강이라고 하는 두글자를 찾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너 나를 막론하고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영원한 평강의 복된 역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요16:20, 빌4:4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경배해야 하고
  여인들의 태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 경이로워했고
  2). 찬미를 불렀고
  3). 경외했고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무서하지 말라고했다(딤후1:7절).
   둘째. 순종해야 하고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했다(삼상15:22-23절).
  1). 기독교 역사는 순종에서부터 시작하고
  2).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3). 배운것이 문제가 아니고
  4). 들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5). 깨 닫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온전히 순종하면서 지키고 실행할 때 역사는 일어 난다.
 
                三. 여인들의 행동 삶의 형태(9절).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다(9절).
  1). 예수님은  이를 저지하셨고(요20:17절).
  2). 감격과 반가움으로 극치에 달했고
  결국 주의 발을 붙잡았다고 했다.
  1). 최대한의 존경심의 대한 표현이고(왕하4:27절).
  2). 경배 다시 말해서 엎드려 절을 했다고 했고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고 하는 신앙적인 고백이고
  이는 동시에 겸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8:2절).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그렇듯이 사모하고 존경한 마음에서부터 우러 나온 행동 삶인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일상적인 삶의 여정을 통하여 몸에 배여 있지 않으면 진정한 겸손과 겸허함이 삶의 여정을 통하여 흘러 나올 수 없을 것이다.
 
              四. 예수님의 반은(10절).
  천사들이 전한 메시지를 생해보자.(5-7절).
  1). 예수님도 무서워 말라고 했고
  2). 천사도 무서워 말라고 했고
  이유가 무엇일까?
  1). 여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무서움과 두려움의 공포다 있었기 때문이고(8절).
  2). 예수님이 함꼐 하실 때 두려움의 공포는 사라졌고(요14:27절).
  반면에 희망과 비전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복된 내일을 바라보게 하는 희열의 감격으로 갈릴리 재회라고 하는 확약이 성취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오시는 메시야 예수를 사모하면서 가슴벅차할 수있는 희열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는 신앙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
  1). 만나야 한다는 사모함이 있어야 하고
  2). 복된 역사가 주어진다는 부푼 꿈이 있어야 하고
  3). 예수님과 형제가 되었다고 하는 벅찬 감격이 있어야 하고
  이때에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친구였지만 형제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요15:14-15절). 사실 이러한 호칭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자. 자신만 살겠다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존재들인데 그러나 십자가 보혜사 성령의 피로 값 주고 사싱 생명체들이기에 그 어떤 역사가 있었다 할지라도 가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26:56절).
  이것이 관족관계이다.
인류의 장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예수님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들 역시 부끄러운 것일 없다(롬8:29, 히1:6, 2:11절).
  이것이 기독인으로서 특권이고 최상의 복된 역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권과 복된 역사를 영위하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없다는 사실에 좀 더 열심히 그리고 확고한 신앙 삶의 여정으로 도약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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