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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원본 내용 ---------
본문 말씀 : 마28 : 11 - 15
말씀 제목 : 부활에 대한 거짓 소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외는 아니다.
1). 인간 삶의 욕망에 불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2). 육신적인 안일과 안욕은 염치가 없고
3). 세상적인 가시적 안목에 발목이 잡히면 벗어날 길이 없고
이것이 타락과 부패로 일관 된 인간성이다.
1). 진리도 소용이 없고
2). 유익과 이익에만 집착하고
3). 너 아닌 나라는 주체만 생각하고
4). 윤리와 도덕은 무시하고
이것이 아나무인격인 인간이다.
더욱이 도를 넘어가면서 흔히 말하는 괴담까지 서슴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양심이 화인 맞은 실태이다.
이것이 오늘의 말씀의 요지가 아닌가 한다.
예수님 살아 생전에 예언적인 말씀으로 당시 기득권자들인 종교 지도자들은 비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켰지만 그래더 미심쩍은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뭇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가고자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속된 말로 괴담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27:57-66절).
1).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고
2). 사실을 왜곡시키는 모리배들이었고
왜일까요?
파수꾼들의 보고에 그들은 당황했으니 그렇듯이 염려했던 예수님 부활의 사실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이러한 역사가 현실로 들어날까 노심초사 걱정했지만 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들어나고 말았으니 당연한 처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맞는 말이다.
1). 진리가 비진리 될 수 없고
2). 비진리가 진리 될 수 없고
생각해보자.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이 아무리 교묘하다 할지라도 진리를 비 진리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15, 요8:32, 엡6:14, 잠12:19절).
그런데도 말이다.
비류들은 단순하게 순리대로 모든 일들을 이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진리와는 맞지 읺는 모순된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1). 음모이고
2). 중상묘략이고
생각해 보세요.
1).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유다의 배신을 이용했고
2). 불법적인 재판을 감행하여 죄인으로 몰아세웠고(마26:59절).
뿐 만 아니라
1). 빌라도 앞에서는 거짓된 죄목으로 고발했고(마27:1, 11절).
2).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뇌물 공세를 했고
이것이 죄악된 세상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본 말씀에 의미와 오늘날 기독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一. 예수님 부활에 대한 괴담과 이설(11-15절).
어쩌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교회는 다니고 직분자는 되었어도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군지 조차 모르고 더욱이 자신이 생명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조차 없는 자들이 허다 하다.
이것이 문제이다.
1). 부활의 역사도
2). 생명 구원도
3). 천국에 대한 확신도
불확실한 상태가 너무나도 많다.
2.000 여년이 넘게 흘러온 기독교 역사에 아직까지도 모호한 문제점들로 연약한 신앙인들의 심령 상태를 혼잡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1). 도적설
2). 기절설
3). 주관적 환상설
4). 객관적 환상설
첫째
. 도적 설(11-15, 27:62-64절).
예수님 부활사건을 전후해서 생긴 사건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포된 사건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한 뒤 부활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하는 괴담이다.
둘째
. 기절 설
십자가에서 돌가시지 않고 기절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죽었다고 무덤에 장했지만 사실상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난 것을 가지고 부활했다고 가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 상에서 로마 군병들이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찔러서 돌아가신 것읗 확인했다는 점이다(요19:33-34절).
셋째
. 주관적 환상설
그리움에 사무쳐 허상을 보게된 환상이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할 때 환각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인간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500명 이상이 어떻게 동시에 환각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고전15:6절).
맞는 말이다.
막말로 제자들 가운데도 부활을 불신하는 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인간적인 사고로서 이해타산에 모리배가 된 파렴치한들이라 할지라도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을 만들어 가면서 정당화 시키려고 했을까(17, 막16:8, 11, 14, 눅24:11, 37, 요20:24-25절).
넷째
. 객관 적 환상설
십자가 사건은 영혼 불멸의 역사다.
1). 부활이라는 전제로 말미암아 입증을 예수님이 시키신 것이고
2). 세상적인 현상적 이론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3). 인간의 입지에서 본다면 모호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고
그러나 말이다.
비물질적인 차원에서 현상적으로 이행되어지는 형이상학적인 신학적인 차원으로 돌입하는 전제 조건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영혼이 생종세계와 교통할 수있다는 것은 세상적인 사고를 가지고는 이해하기 힘든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눅16:19-31절).
그렇다면 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빚어진 역사는 하나의 괴담에 불과할 뿐 어느 한 편도 진실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신용할 수도 없고 또한 신용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독신앙이란 진리라고 하는 기초위에 세위진 인간 삶의 본질적인 근본 문제를 다루는 첩경으로서 그 누가 무어라 해도 진리만이 최상이라고 하는 불굴의 의지로 세워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二. 부활소식에 반응(11-12절).
당시 사람들만이 아니다.
예수님이 따르던 제자들조차 믿고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았다(27:57-66절). 직접적으로 보고 목격한 제자들인도 말이다.
1). 파수꾼들이 보았고
2). 여인들이 목격했고
3). 제자들이 뒤 늦게 찾아가 목격했고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
1). 괴담까지 만들었고
2). 예수님 시체를 도적질한 다음 부활했다고 소문을 퍼뜨렸고
더욱이 문제는 말이다.
병사들에게 뇌물까지 주면서 미사여구한 말로 현혹시키려고 했으니 빌라도로부터 안전까지 보호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거짓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설령 순간적으로 볼 때 짝 둥이 진품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그래서 사람들이 현혹되고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짝 뚱은 짝 뚱으로 들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과 여건을 만들어 간다 할지라도 진짜가 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1). 진리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2). 짝 뚱은 짝 뚱이기 때문에 추락하고
이렇게 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리는 변혁될 수 없는 것이기에 보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요8:32, 엡6:14, 잠12:19절).
1). 부활이란 소식은 분명히 기쁜 소식이고
2). 대제사장들에게 두려움의 소식이고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놀랍게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상관없이 소문에 소문이 퍼져 나갔으니 여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다(롬10:9-10, 고후2:16절).
1). 받아 드리는 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2). 받아 드리지 않는자에게는 여전히 죄인으로 머물러 있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기독인들에게는 엄청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둠의 속한 사단마귀들의 졸개들은 기승을 부리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리를 왜곡시켜가면서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다(딤후4:2절).
이는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드리지 않고 인간 자신들의 육신적인 기득권에 매료되어 잘잘못을 회개하면서 돌이키기 보다는 정당화시켜가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기에 급급한 시대적인 변천사를 바라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요.
三. 비 진리자들의 음모(11-15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외가 아니다.
1).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2).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3). 맘몬이라는 우상숭배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되면 헤어나지 못한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방해요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1). 가룟 유다를 이용했고
2). 불법 재판을 시도했고(마26:59절).
3). 거짓 죄목으로 고발을 했고(마27:1, 11절).
그것도 당대 최고의 법조인들이라고 하는 공회원들이다.
돈을 많이 주었다
.
분명코 뇌물이라는 비리로서 있을 수 없는 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뇌물로서 군사들을 매수했을까.
1). 로마 군사들은 12명 내지 72명이고
2). 4명이 1개조로 3시간 마다 교대하고
3). 3일간 인원은 72명에 이르고
이러한 이들을 매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비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 삶의 여정에 물질이란 없어도 문제가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물질을 물질 답게 사용하지 못하면 어둠의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도 익히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13절).
1).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모순점을 안고 있고
2).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렇습니다.
때문에 문제는 거짓말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는 것이다(행12:19, 16:27-28절). 그런데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모순된 상황에서 타락하다 못해 부패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렘17:9, 딤후2:16-18, 3:6-8절).
1). 죄악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고
2). 진리를 혼돈시키면서 혼미하게 하고
3). 사단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여기에서 주어지는 교훈이 있다.
1). 불의 자들의 밀접한 관계는 불의를 합법화 시킨다는 것이고
2). 어둠의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날뛴다 할지라도 한낮 거미줄에 불과하고
3). 진리와 비진리
4). 사실과 거짓 말
5). 인간의 조직에 무기력함
6). 정직한 믿음의 체제
그리고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두 진리라고 하는 체제 속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해 나갈 때 하나님의 역사는 성취될 것이다(시2:6, 롬8:37-39, 고전15:57, 요일5:4절).
여기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15절).
미사여구한 말로 괴담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연약한 존재라면 의구심을 가지고 신앙적인 삶의 생활에 크나큰 여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기독인들은 그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신앙적인 척도가 달라질 뿐 ㄴ만 아니라 생명구원의 문제도 달라진다.
기독교 본질은 생명구원이다.
A. D. 50-70년 경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거짓소문은 일종의 담화문 형식으로 작성이 되어 진리인 복음에 못지않게 유포되었으니 참으로 해학성이 그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꿈직한 것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실감하게 한다.
진실이 신발 끈을 매는 동안 거짓말은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짓은 거짓으로 끝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 말씀 : 마28 : 11 - 15
말씀 제목 : 부활에 대한 거짓 소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외는 아니다.
1). 인간 삶의 욕망에 불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2). 육신적인 안일과 안욕은 염치가 없고
3). 세상적인 가시적 안목에 발목이 잡히면 벗어날 길이 없고
이것이 타락과 부패로 일관 된 인간성이다.
1). 진리도 소용이 없고
2). 유익과 이익에만 집착하고
3). 너 아닌 나라는 주체만 생각하고
4). 윤리와 도덕은 무시하고
이것이 아나무인격인 인간이다.
더욱이 도를 넘어가면서 흔히 말하는 괴담까지 서슴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양심이 화인 맞은 실태이다.
이것이 오늘의 말씀의 요지가 아닌가 한다.
예수님 살아 생전에 예언적인 말씀으로 당시 기득권자들인 종교 지도자들은 비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켰지만 그래더 미심쩍은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뭇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가고자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속된 말로 괴담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27:57-66절).
1).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고
2). 사실을 왜곡시키는 모리배들이었고
왜일까요?
파수꾼들의 보고에 그들은 당황했으니 그렇듯이 염려했던 예수님 부활의 사실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이러한 역사가 현실로 들어날까 노심초사 걱정했지만 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들어나고 말았으니 당연한 처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맞는 말이다.
1). 진리가 비진리 될 수 없고
2). 비진리가 진리 될 수 없고
생각해보자.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이 아무리 교묘하다 할지라도 진리를 비 진리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15, 요8:32, 엡6:14, 잠12:19절).
그런데도 말이다.
비류들은 단순하게 순리대로 모든 일들을 이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진리와는 맞지 읺는 모순된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1). 음모이고
2). 중상묘략이고
생각해 보세요.
1).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유다의 배신을 이용했고
2). 불법적인 재판을 감행하여 죄인으로 몰아세웠고(마26:59절).
뿐 만 아니라
1). 빌라도 앞에서는 거짓된 죄목으로 고발했고(마27:1, 11절).
2).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뇌물 공세를 했고
이것이 죄악된 세상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본 말씀에 의미와 오늘날 기독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一. 예수님 부활에 대한 괴담과 이설(11-15절).
어쩌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교회는 다니고 직분자는 되었어도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군지 조차 모르고 더욱이 자신이 생명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조차 없는 자들이 허다 하다.
이것이 문제이다.
1). 부활의 역사도
2). 생명 구원도
3). 천국에 대한 확신도
불확실한 상태가 너무나도 많다.
2.000 여년이 넘게 흘러온 기독교 역사에 아직까지도 모호한 문제점들로 연약한 신앙인들의 심령 상태를 혼잡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1). 도적설
2). 기절설
3). 주관적 환상설
4). 객관적 환상설
첫째
. 도적 설(11-15, 27:62-64절).
예수님 부활사건을 전후해서 생긴 사건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포된 사건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한 뒤 부활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하는 괴담이다.
둘째
. 기절 설
십자가에서 돌가시지 않고 기절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죽었다고 무덤에 장했지만 사실상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난 것을 가지고 부활했다고 가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 상에서 로마 군병들이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찔러서 돌아가신 것읗 확인했다는 점이다(요19:33-34절).
셋째
. 주관적 환상설
그리움에 사무쳐 허상을 보게된 환상이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할 때 환각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인간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500명 이상이 어떻게 동시에 환각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고전15:6절).
맞는 말이다.
막말로 제자들 가운데도 부활을 불신하는 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인간적인 사고로서 이해타산에 모리배가 된 파렴치한들이라 할지라도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을 만들어 가면서 정당화 시키려고 했을까(17, 막16:8, 11, 14, 눅24:11, 37, 요20:24-25절).
넷째
. 객관 적 환상설
십자가 사건은 영혼 불멸의 역사다.
1). 부활이라는 전제로 말미암아 입증을 예수님이 시키신 것이고
2). 세상적인 현상적 이론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3). 인간의 입지에서 본다면 모호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고
그러나 말이다.
비물질적인 차원에서 현상적으로 이행되어지는 형이상학적인 신학적인 차원으로 돌입하는 전제 조건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영혼이 생종세계와 교통할 수있다는 것은 세상적인 사고를 가지고는 이해하기 힘든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눅16:19-31절).
그렇다면 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빚어진 역사는 하나의 괴담에 불과할 뿐 어느 한 편도 진실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신용할 수도 없고 또한 신용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독신앙이란 진리라고 하는 기초위에 세위진 인간 삶의 본질적인 근본 문제를 다루는 첩경으로서 그 누가 무어라 해도 진리만이 최상이라고 하는 불굴의 의지로 세워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二. 부활소식에 반응(11-12절).
당시 사람들만이 아니다.
예수님이 따르던 제자들조차 믿고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았다(27:57-66절). 직접적으로 보고 목격한 제자들인도 말이다.
1). 파수꾼들이 보았고
2). 여인들이 목격했고
3). 제자들이 뒤 늦게 찾아가 목격했고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
1). 괴담까지 만들었고
2). 예수님 시체를 도적질한 다음 부활했다고 소문을 퍼뜨렸고
더욱이 문제는 말이다.
병사들에게 뇌물까지 주면서 미사여구한 말로 현혹시키려고 했으니 빌라도로부터 안전까지 보호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거짓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설령 순간적으로 볼 때 짝 둥이 진품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그래서 사람들이 현혹되고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짝 뚱은 짝 뚱으로 들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과 여건을 만들어 간다 할지라도 진짜가 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1). 진리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2). 짝 뚱은 짝 뚱이기 때문에 추락하고
이렇게 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리는 변혁될 수 없는 것이기에 보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요8:32, 엡6:14, 잠12:19절).
1). 부활이란 소식은 분명히 기쁜 소식이고
2). 대제사장들에게 두려움의 소식이고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놀랍게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상관없이 소문에 소문이 퍼져 나갔으니 여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다(롬10:9-10, 고후2:16절).
1). 받아 드리는 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2). 받아 드리지 않는자에게는 여전히 죄인으로 머물러 있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기독인들에게는 엄청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둠의 속한 사단마귀들의 졸개들은 기승을 부리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리를 왜곡시켜가면서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다(딤후4:2절).
이는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드리지 않고 인간 자신들의 육신적인 기득권에 매료되어 잘잘못을 회개하면서 돌이키기 보다는 정당화시켜가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기에 급급한 시대적인 변천사를 바라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요.
三. 비 진리자들의 음모(11-15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외가 아니다.
1).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2).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3). 맘몬이라는 우상숭배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되면 헤어나지 못한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방해요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1). 가룟 유다를 이용했고
2). 불법 재판을 시도했고(마26:59절).
3). 거짓 죄목으로 고발을 했고(마27:1, 11절).
그것도 당대 최고의 법조인들이라고 하는 공회원들이다.
돈을 많이 주었다
.
분명코 뇌물이라는 비리로서 있을 수 없는 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뇌물로서 군사들을 매수했을까.
1). 로마 군사들은 12명 내지 72명이고
2). 4명이 1개조로 3시간 마다 교대하고
3). 3일간 인원은 72명에 이르고
이러한 이들을 매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비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 삶의 여정에 물질이란 없어도 문제가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물질을 물질 답게 사용하지 못하면 어둠의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도 익히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13절).
1).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모순점을 안고 있고
2).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렇습니다.
때문에 문제는 거짓말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는 것이다(행12:19, 16:27-28절). 그런데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모순된 상황에서 타락하다 못해 부패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렘17:9, 딤후2:16-18, 3:6-8절).
1). 죄악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고
2). 진리를 혼돈시키면서 혼미하게 하고
3). 사단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여기에서 주어지는 교훈이 있다.
1). 불의 자들의 밀접한 관계는 불의를 합법화 시킨다는 것이고
2). 어둠의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날뛴다 할지라도 한낮 거미줄에 불과하고
3). 진리와 비진리
4). 사실과 거짓 말
5). 인간의 조직에 무기력함
6). 정직한 믿음의 체제
그리고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두 진리라고 하는 체제 속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해 나갈 때 하나님의 역사는 성취될 것이다(시2:6, 롬8:37-39, 고전15:57, 요일5:4절).
여기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15절).
미사여구한 말로 괴담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연약한 존재라면 의구심을 가지고 신앙적인 삶의 생활에 크나큰 여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기독인들은 그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신앙적인 척도가 달라질 뿐 ㄴ만 아니라 생명구원의 문제도 달라진다.
기독교 본질은 생명구원이다.
A. D. 50-70년 경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거짓소문은 일종의 담화문 형식으로 작성이 되어 진리인 복음에 못지않게 유포되었으니 참으로 해학성이 그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꿈직한 것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실감하게 한다.
진실이 신발 끈을 매는 동안 거짓말은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짓은 거짓으로 끝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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